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인 및 후천면역결핍증후군 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차별

Social stigma and discrimination towards people living with HIV infection and AIDS patients

Article information

J Korean Med Assoc. 2024;67(3):194-203
Publication date (electronic) : 2024 March 10
doi : https://doi.org/10.5124/jkma.2024.67.3.194
1Youth PLHIV Community of Korea ‘R’, Seoul, Korea
2Department of Cultural Anthropology, Yonsei University, Seoul, Korea
3Korean Network of People Living with HIV/AIDS KNP+, Seoul, Korea
권소리1orcid_icon, 서보경,2orcid_icon, 소성욱1orcid_icon, 이소중3orcid_icon
1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 알
2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3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Corresponding author: Bo Kyeong Seo E-mail: bo.seo@yonsei.ac.kr
Received 2023 December 4; Accepted 2023 December 29.

Trans Abstract

Background

Social stigma and discrimination are major barriers to an effective national response to human immunodeficiency virus (HIV)/acquired immunodeficiency syndrome (AIDS), and there have been repeated calls to transform the current surveillance-focused policy. Serious instances of discrimination and clinical service failings increase the urgency and importance of addressing issues relevant to AIDS-related stigma. Yet, progress in achieving effective and people-centered responses to AIDS is insufficient.

Current Concepts

Based on a comprehensive multi-sectoral review of a wide range of literature, this article examines the key features of AIDS-related stigma in South Korea and evaluates governmental and organizational efforts to redress them. Three major areas, of issues and possibilities for change, are identified: (1) addressing discrimination in health care settings, (2) decriminalization of HIV transmission, according to the Undetectable=Untransmittable (U=U) principle, (3) improving the quality of life and social inclusion of people living with HIV.

Discussion and Conclusion

An extensive examination of existing evidence on AIDS-related stigma, guided by the authors’ long-term experience of public participation and civic empowerment, suggests that by placing these three issues at the center of the national response to AIDS, significant improvement in the AIDS care continuum is achievable. People-centered service delivery models that focus on dismantling structural barriers and incorporating leadership from key populations will enable high-impact public health responses to AIDS and HIV infection.

서론

효과적인 항바이러스제 요법의 도입과 고도화는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 virus, HIV) 감염의 예후를 현저히 개선하였을 뿐만 아니라, 치료를 통한 효과적인 예방을 가능하게 하였다. 2016년 국제연합(United Nations)은 2030년까지 후천면역결핍증후군(acquired immunodeficiency syndrome, AIDS)이 더는 공중 보건상의 위협이 되지 않도록 전세계적으로 유행을 종식시키겠다는 선언을 한 바 있으며, 2023년 7월 유엔에이즈(The Joint United Nations Programme on HIV/AIDS, UNAIDS)는 치료를 통한 예방 정책을 통해 이러한 목표가 여러 지역에서 달성 가능한 수준에 도달하였다는 희망적인 발표를 하기도 하였다[1]. 전 세계의 여러 국가들이 조기 검진과 조기 치료, 치료 지속, 신규 감염인 감소라는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는 것에 비해, 한국의 상황에는 큰 진전이 없다[2]. 한국은 기술적으로 고도화된 의료 환경과 전국민 의료보험을 통해 가입자에 한하여 폭넓은 치료 보장성을 확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규 감염 감소와 조기 발견에 따른 에이즈로의 이환 예방, 감염인의 건강 증진 및 사회 참여 확대라는 주요 영역에서 모두 충분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지체의 가장 큰 원인은 HIV에 부착된 부정적 인식과 감염인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한국 사회에 크게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질병의 낙인화 정도와 예방 및 치료에 대한 인식, 감염인의 전반적인 건강 수준 사이의 높은 연관성은 그간 여러 연구를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3]. HIV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클수록 자발적 검사에 따른 조기 발견 가능성이 낮아지고, 지속적으로 치료를 유지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커진다[4]. 더불어 낙인(stigma) 경험이 클수록 낮은 면역 상태로 뒤늦게 감염 사실을 알게 되는 후기 발현(late presentation) 발생의 가능성이 더 커진다[5].

본 논문은 한국에서 HIV 관련 낙인에 대한 연구와 개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선택적 문헌 연구(selective narrative review)에 기반하여 살폈다.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HIV에 관련된 낙인과 차별에 대한 연구는 특히 감염인 당사자 단체들의 성장을 기반으로 이들의 요구와 필요에 의해 주도된 바 있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에 주목하면서 본 논문은 HIV 감염인 당사자들이 차별과 낙인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제도적 변화를 요구해 왔는지를 주로 분석하였다. 문헌 연구의 대상으로는 학술 논문에 한정하지 않고, 연구 보고서, 국내 및 국제 가이드라인, 판결문, 아카이브 구축 연구 등을 폭넓게 포함하였다. 이 논문은 체계적 문헌고찰을 목표하지 않으며, 환자 및 공공 참여 모델(patient and public involvement)과 협업적 분석론에 입각하여 감염인 당사자들의 공통 경험을 중심에 두고 국내외 문헌의 선택과 검토를 수행하였다[6,7].

한국 HIV 관련 낙인의 주요 특징

낙인은 특정한 부류의 사람, 행동, 정체성에 부여된 불명예의 표식으로, 사회문화적 현상이자 도덕적 경험이기도 하다[8,9]. 낙인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한 사람이 온전한 인격체로 평가받지 못하고, 오로지 그에게 부여된 특정 속성으로 인해 부정적이고 낮은 대우를 강요 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HIV와 AIDS에 대한 낙인은 감염한 사람들을 의학적, 사회적으로 위험한 존재로 취급하는 과정을 통해 구체화되며, 그에 따른 차별과 배제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로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10].

한국에서는 1980년대 HIV 유행 초기부터 국가 주도의 강력한 통제 및 감시 정책을 펼친 바 있으며, 유행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매우 작았음에도 불구하고 질병에 대한 공포가 오랜 기간 유지되어 온 바 있다. 한국에서 HIV 감염은 죽음, 오염과 성적 타락, 죄에 대한 징벌과 강하게 결부되어 감염한 사람들에게 쉽게 도덕적 오명을 씌우는 기제로 작동하여 왔다. 그리고 이러한 낙인은 감염인들에 대한 비난과 차별, 사회적 배제와 권리 제한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정당화해왔다. 낙인은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 중의 하나로, 감염인 개별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물론 한 사회에서 질병이 유행하는 방식 역시 구조화한다[11]. 그러나 한국에서 HIV 감염과 AIDS의 발병 경험에서 낙인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한 연구는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충분히 이뤄지지 못하였다[12-15].

한국에서 실제 감염인이 경험하는 낙인의 정도를 확인하고자 하는 체계적인 시도는 2016년 처음 이뤄진 바 있다. 유엔에이즈는 2005년 전 세계의 감염인들이 처한 사회적 조건이 어떠한지, 특히 차별과 배제의 경험에서 어떤 차이가 나타나는지를 비교 연구하기 위하여 ‘HIV낙인지표조사(People Living with HIV Stigma Index)’를 개발한 바 있다[16]. 90여 개국 이상에서 이 조사 도구를 활용하여 낙인 경험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는데, 한국에서는 2016년에 이르러서야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의 주도로 처음 실행되어 2017년에 첫 보고서가 나온 바 있다[17]. ‘한국 HIV낙인 지표조사’는 환자 당사자의 주도로 연구 기금의 조성과 기획, 완성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한국에서는 매우 드문 시도이기도 하였다.

해당 연구는 특히 한국의 감염인들이 매우 높은 수준의 내적 낙인(internalized stigma)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공중보건 연구에서 낙인 경험은 주로 직접적으로 차별이 실현된 경우(enacted stigma), 낙인화된 대상이 될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경우(anticipated stigma), 자신에 대한 부정적 가치 평가를 내재화하는 경우(internalized stigma)로 구별된다[3]. 한국의 경우 HIV 감염 이후로 수치심, 죄책감, 자기 혐오와 같은 부정적 감정을 매우 높은 수준에서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 HIV낙인지표조사에 참여한 총 104명의 감염인 중 78.8%가 지난 1년간 자신에 대한 소문이 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고 응답하였으며, 75%가 자책을, 64.4%가 죄책감을 느꼈다고 답하였다[17]. 동일한 설계의 연구를 수행한 다른 국가들의 결과와 비교하면, 한국에서 내적 낙인에 따른 부담이 매우 크다는 것이 더욱 명확히 드러났다. 예를 들어 같은 질문에 독일의 응답자는 22.8%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에는 14.5%만이 죄책감을 느낀다고 답하였다. 자살 충동에 대한 응답 역시 한국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17].

유엔에이즈의 연구 틀에 기반한 낙인 지표 연구가 일회성에 그친 것에 비해, 2-30대로 연령을 한정하여 HIV 감염인의 자기 인식 및 HIV 관련 지식 정도의 변화를 반복적으로 측정하는 연구가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총 4차례 행해진 바 있다[18]. 해당 연구에서는 우울 경험이나 자살 충동 및 시도에 있어서는 여전히 매우 높은 응답률을 보이지만, 내적 낙인이라고 분류할 수 있는 부정적 자기 인식은 점차 감소하는 경향을 보고하였다. 이러한 연구들은 HIV 낙인의 전반적인 지형을 그려내려는 중요한 시도이나, 설문 문항 설계의 정교함이나 연구 참여자의 규모, 그에 따른 통계적 유의성 및 상관성 판별 측면에서 더 큰 분석적 함의를 가지기에는 일부 한계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HIV 낙인의 전반적인 경향과 영향력을 비교적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는 연구 틀을 개발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수행하여 정책 수립의 근거로 삼고자 하는 의학계와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의료 환경에서의 차별 현황과 개선의 노력

HIV의 만성질환화는 대다수의 감염인들이 에이즈 정의에 해당하는 합병증을 경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비감염인 인구와 유사하게 만성질환 치료, 치과 치료, 수술 및 입원 치료 등의 복합적 의료 이용의 필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19]. 한국의 의료 현실에서는 감염내과를 비롯한 몇몇 임상과를 제외하고는 HIV 감염인에 대한 진료 경험이 부족하며, 이에 따라 수술 및 입원 거부 역시 오랜 기간 지속된 바 있다. 특히 급성기 치료 이후 입원할 수 있는 아급성기 치료 병상 및 요양 병상에의 접근이 쉽지 않은 상황이 감염인 인구의 고령화와 함께 2010년 이후 더욱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의료 환경에서 HIV 감염을 근거로 한 진료 거부 및 차별 대우는 198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져 온 바 있으나, 최근 십 년간 이에 대한 감염인 당사자들의 권리 의식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2007년부터 2016년까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접수된 의료 기관에서의 HIV 감염을 근거로 한 차별 행위에 대한 진정은 총 31건에 이르며, 2022년까지 인권위의 조사 과정을 거쳐 차별 사례 결정을 받은 경우 역시 6건에 이른다[20]. 2016년 인권위는 상황의 심각성을 감안하여, 대책 마련을 위해 광범위한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해당 조사는 HIV 감염인 208명의 의료 이용에 대한 설문 조사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11.5%가 지난 5년간 감염 사실이 확인되자 이미 계획된 수술이 취소되거나 거부당한 적이 있다고 답하였으며, 15%가 같은 기간 동안 의료인으로부터 자신의 성 정체성 혹은 성적 실천에 대한 비하 발언이나 차별적 태도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보고하였다[21]. 더불어 의료 현장에서의 낙인 경험은 주관적 건강 수준 평가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전체 응답자의 87.7%가 지속적인 항바이러스제 치료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 악화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고 응답하였다[21].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인권위는 2017년 12월 상임위원회 결정을 통해 ‘HIV 감염인과 AIDS 환자에 대한 의료차별 개선을 위한 정책권고’를 내린다[22]. 관계 부처인 보건복지부에는 의료인들이 표준주의를 비롯한 감염관리 지침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이해하고, HIV 감염인의 치료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의사 국가시험에서 이를 검증하도록 권고하였으며, 더불어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에 감염인에 대한 의료 차별 금지 규정을 추가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와 함께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에는 의료인의 인식이 개선될 수 있도록 ‘HIV/AIDS 감염인 인권침해 및 차별 예방 가이드’를 마련하고, 국공립병원 및 시도립병원의 의료인을 대상으로 감염인에 대한 인권침해 및 차별 예방 교육을 실시할 것을 주문하였다.

보건복지부에 내려진 권고 내용은 2023년 12월 현재까지 이행된 바가 없으나, 질병권리청은 권고를 일부 받아들여 2020년 처음으로 ‘HIV 감염인 진료를 위한 의료기관 길라잡이’를 발간했다[23]. 해당 길라잡이는 의료기관에서 차별받지 않고 동등하게 최선의 진료를 받을 권리를 환자의 건강권으로 명시하고, 비밀보장과 사생활 보호, 환자 존중의 원칙을 제시한다. 또 특별한 의학적 사유 없이 HIV 감염인을 별도의 장소에서 진료하거나 진료 순서를 미루지 말아야 하며, HIV 감염인을 비롯한 모든 환자의 진료 과정에서 표준주의 의무를 지킬 것을 명시하고 있다. HIV 감염 여부만을 이유로 필요 이상의 보호구를 착용할 필요가 없으며, 수술 시에는 모든 환자에게 공통적인 혈액매개병원체 주의 지침을 준수할 것을 안내하고 있다. 해당 길라잡이는 한국에서 최초로 HIV 감염인 진료에 관해 정부 부처가 제시한 지침으로 환자 단체들과는 물론 대한병원협회와 대한의사협회의 자문과 의견 조율 과정을 거쳐 마련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정책적 진일보를 보여준다.

그러나 ‘HIV 감염인 진료를 위한 의료기관 길라잡이’ 마련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의료 현장에서 과연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는 충분히 검토되지 못하였다. 차별 금지 원칙에 기반하여 환자와 의료제공자의 안전을 위한 교육과 홍보가 과연 실질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일선 의료 현장에서 불안이 아닌 자신감을 가지고 HIV 감염인을 진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떤 안내와 지원이 필요한지, 보다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 특히 의료 기관별로 자원의 수준과 인력의 경험치가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여, 중소병원, 요양병원, 치과, 일차의료기관과 같은 현장에서 차별 금지와 환자 존중, 표준주의 의무 준수의 원칙이 잘 지켜질 수 있도록 의료인을 위한 안내와 지원이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모든 의료인이 자신의 의료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상담 및 진료, 외과적 수술이나 시술, 내시경 시술 등에서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는 HIV 감염인을 진료할 경우, 다른 환자와 다를 바 없이 충분히 잘 진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진료 중 HIV 감염이 의심되거나 처음 감염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적절한 검사 전후 상담과 진료 연계를 할 수 있도록, 관련 사항이 지속적으로 안내되고 교육될 필요가 있다. 모든 의료인이 세부 전공과 관계없이 HIV 감염인을 진료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일은 단순히 질병의 전파를 주의하도록 하는 감염 관리의 차원을 넘어 더 큰 의의를 가질 수 있다. 다양한 현장에서 의료인들이 HIV 감염인을 차별없이 진료하는 방식을 익히는 과정은 그 자체로 환자 존중 의료(people-centered care)를 위한 기본적인 가치와 태도를 습득하고 실현하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비 의료제공자 교육에서 HIV/AIDS에 관련된 최근의 임상 지식과 차별금지의 원칙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포함시킬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의사 국가시험 활용을 비롯하여 예비 의료인이 HIV 관련 및 표준주의 준수 원칙에 대해 충분히 습득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교육의 기회가 제공되어야 하며, 수련의 및 전공의 교육에서도 편견없이 다양한 환자를 응대하고, 환자가 처한 사회문화적 맥락을 고려하며 진료할 수 있는 역량을 더 강조할 필요가 있다[24]. 또한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 및 간병 직역, 병원 관리자들이 HIV에 관한 근거 없는 불안감을 줄이고, 과도한 격리 및 불필요한 주의 조치를 취하지 않도록 교육할 수 있는 제도와 자원이 마련되어야 한다.

Undetectable=Untransmittable 캠페인에 기반한 사법 제도 개선의 필요성

HIV 의학의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 중의 하나는 HIV가 검출한계치 미만으로 억제된 경우 타인에게 전파가 불가능하다는 ‘Undetectable=Untransmittable (U=U) 캠페인’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이를 기반으로 보다 효과적인 치료와 예방 정책을 도출하였다는 점이다[25]. 전 세계적으로 U=U 캠페인에 입각하여 감염인에게 차별적인 법을 개정하려고 하는 시도가 지난 10년간 광범위하게 일어난 바 있다. 국제에이즈학회지(Journal of the International AIDS Society)는 2018년 ‘형사법의 맥락에서 HIV 과학에 대한 전문가 의견서’를 발표하고, HIV 전파의 범죄화가 공중 보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최신의 과학적 사실에 입각하여 관련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일찍이 표명한 바 있다[26]. Lancet HIV를 비롯한 여러 세계적인 학술지들 역시 편집부 논설 및 사설을 통해 HIV 전파, 노출 또는 감염 사실에 대한 비고지(non-disclosure)를 처벌하는 법 조항이 비과학적이고 차별적일 뿐만 아니라 효과적인 HIV 예방을 저해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한 바 있다[27,28]. HIV 감염인과 특정 인구 군을 감시 및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법안들이 차별적일 뿐만 아니라 전파를 예방하는 데 역효과를 일으킨다는 것이 이미 HIV 의학과 글로벌 보건 분야에서 원칙으로 자리잡은 바 있다[29].

한국의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은 1987년 제정 당시부터 HIV의 전파매개행위를 금지한 바 있으며, 이에 대한 처벌 규정 역시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HIV에 대한 충분한 과학적 이해와 치료법의 발전이 이뤄지기 훨씬 이전에 제정된이 법은 이후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쳤으나, “제19조 전파매개행위의 금지”, 즉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파매개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의무 조항과 그에 따른 처벌 규정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이 법에 따르면 자신의 감염 사실을 알고 있는 HIV 감염인이 상대와의 합의 여부와 관계없이 콘돔을 사용하지 않은 성행위를 하였다고 고발될 경우 벌금형 없이 3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이 조항의 문제점은 총 36개의 시민단체가 모여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개정 운동을 벌인 2006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2007년 인권위 역시 이 조항이 예방에 기여하지 않으며, 실제 전파가 일어났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과도한 형사처벌을 가한다고 지적하면서 법 개정을 권고한 바 있다[30].

해당 법령의 적절성에 대한 논의는 2019년 관련 사건을 다루던 서울서부지법 재판부에서 전파매개행위의 금지 조항이 과연 헌법에 합치하는지를 판단해달라고 위헌법률 심판 제청을 하면서 다시 본격화되었다. 해당 조항이 어떤 행위를 금지하는지 그 의미와 범위가 불명확하며, 감염인의 기본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점이 쟁점으로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2022년 11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이에 대한 공개 변론이 이뤄진 바 있으며, 에이즈학회를 비롯하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헌법학자, 예방의학 전문의 등 여러 단체 및 전문가들이 해당 법령이 예방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기여하지 않으며, 헌법의 주요 가치에도 위배된다는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31]. 2023년 10월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4명이 합헌 의견을, 5인이 일부 위헌 의견을 냄으로써 해당 조항이 헌법에 합치한다고 선고한다[32]. 위헌심판은 9명 중 재판관 6인 이상의 의견이 동일해야 내려질 수 있기 때문에, 위헌 의견이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합헌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선고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합헌과 위헌 의견 모두 바이러스 미검출 시 전파 불가(U=U)라는 사실에 기반하여 바이러스 억제 상태일 경우 콘돔 사용과 같은 예방 조치가 없다고 하더라도 타인에게 HIV를 감염시킬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인정하였다는 점이다[32]. 그러나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국가의 국민 건강 보호’라는 공익을 위해 해당 조항이 유지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반하여 일부 위헌 의견은 현행 조항이 감염인이면 치료 여부와 관련없이 언제나 타인에게 HIV를 전파시킬 수 있다는 오해를 야기하며 질병에 대한 낙인을 강화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치료받고 있는 감염인의 경우 전파매개행위금지 및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감염인의 치료 유지의 동기를 강화할 뿐만 아니라,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의식을 긍정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공중보건상의 이득을 가져올 수 있다고 명시한다. 해당 판결에서 다수를 이루는 위헌 의견이 그간 HIV 의학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최신의 과학적 및 의학적 근거에 기반하여 사법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판결은 해외의 관련 입법례에 대한 간략한 검토를 포함하고 있으나, 사법 제도 개선을 위해 각국의 공중보건 당국이 실제로 어떤 국가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였다. 예를 들어 합헌 의견은 일본과 같은 국가에서는 19조와 유사한 법 조항은 이미 1999년에 폐지하였으나, 미국의 여러 주(州)에서 감염 사실을 상대에게 고지하지 않은 경우를 포함하여 HIV 전파를 매개한 행위와 관련하여 사법적 처벌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미국 연방 정부는 2021년 바이든 대통령이 ‘HIV/AIDS 국가 전략’을 발표하면서, 보다 효과적이고, 평등한, 사람 중심의 HIV 프로그램 개발을 촉구하고, 미국의 모든 주들이 이에 따라 관계 법령을 개정하도록 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설정한 바 있다[33].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역시 2021년부터 2023년 현재까지 일관되게 특정 주에서 유지하고 있는 전파매개행위 관련 처벌 규정이 “공익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나 그 의도에 부합하지 않으며, 더 나은 공중보건을 달성하는 노력을 해치는, 정당화 될 수 없는” 조치라는 점을 강조해 왔으며, 미국의 모든 주에서 비범죄화 원칙에 기반하여 HIV관계 법령을 현대화할 것을 명확하게 권고하고 있다[34].

합헌 판결이 지시하는 것처럼 한국의 현행법은 실제 HIV 전파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감염될지도 모른다는 추상적 위험 그 자체에 타인을 노출시킨 것만으로도 처벌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상정한다. 이는 바이러스 미검출 시 전파 가능성이 없다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과 부합하지 않을 뿐더러, 여전히 HIV 감염인은 공중보건상의 위험한 존재로 특별한 관리와 제재가 필요하다는 부정적 낙인을 그대로 유지하게 한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의 개정을 통해 해당 조항의 폐지 및 현대화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 법 개정까지 많은 시간과 절차가 소요된다고 한다면, 이 조항이 남용되지 않도록 추가적인 조치를 고려해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의 경우는 ‘고의 및 부주의에 의한 성매개 감염 전파’에 대한 처벌 규정을 유지하고는 있으나, 실질적인 전파가 일어나지 않은 경우 기소의 대상에 되지 않도록 하는 조치를 이미 사법 제도 안에서 구현하고 있다. 2010년 영국의 국가에이즈재단(National AIDS Trust)은 HIV 전파에 관련된 불필요한 고소 및 기소를 막기 위해 관련 법령 해석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바 있으며, 영국검찰청(Crown Prosecution Services)은 2019년부터 최신의 과학적 사실에 입각하여 ‘고의 및 부주의에 의한 성매개 감염 전파’에 관한 기소 안내서를 개정한 바 있다[35]. 이 안내서는 HIV 감염인이 미검출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경우, 감염 사실에 대한 사전고지 여부와 관계없이 타인에 대한 전파 예방을 위한 의무를 모두 이행한 것으로 판단하여 기소하지 않도록 한다[36].

19조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선고는 한국에서 HIV 임상 의학의 발전에 부합하는 전반적인 법 제도 개선 및 정책 방향의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은 전파매개행위금지 조항의 폐기를 포함하여 최신의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 미국과 영국의 국가적 대응 방식은 특히 임상 의학에 기반한 보건 당국과 사법부가 상이한 입장을 가질 경우, 공중보건 증진이라는 정책 목적이 일관되게 실현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한국의 질병관리청과 보건복지부 역시 과학적, 의학적 근거에 입각하여 관련 법 개정의 필요성을 일관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영국의 사례와 같이 HIV만을 특수하게 다루는 특별법 체계를 유지하기 보다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의 큰 틀에서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여 여타의 성매개 감염병과 유사한 맥락에서 고의성과 범죄의 심각성이 다뤄져야 한다.

삶의 질 개선과 사회 참여 증진을 위한 노력

한국과 같이 고도의 HIV 치료가 가능해진 여러 국가들에서는 이제 치료를 통한 예방을 넘어 감염된 사람들의 전반적인 삶의 질 개선을 임상 의학 및 국가 정책의 목표로 두어야 한다는 논의가 일찍이 자리잡은 바 있다. 예를 들어 Lancet HIV는 2019년 ‘바이러스 억제를 넘어’라는 특집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HIV 임상 의학의 쟁점은 HIV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평생에 걸쳐 가지게 되는 여러 의료 필요에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인지, 특히 삶의 질 향상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의 문제로 재편되었다고 강조한 바 있다[37]. 한국 역시 감염인 인구의 고령화에 따른 여타 만성질환으로의 이환, 장기적인 항바이러스제 복용에 따른 심혈관질환 및 신장질환 발생 위험성의 증가와 그에 따른 관리의 필요성 등을 예상할 수 있으나, 여전히 일차의료기관에서 진료가 어렵고, 협진 등에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HIV 감염 사실을 밝히고 요양병원에 입원하거나 장기요양시설에 입소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 역시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14]. 그러나 한국에서 HIV 감염인의 삶의 질 개선과 관련된 학술적, 정책적 논의를 찾기는 매우 어렵다.

더욱이 삶의 질 증진은 단순히 의료적 필요에 대한 대응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건강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삶의 여러 다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토대라고 할 수 있다. HIV의 만성질환화는 치료받고 있는 모든 감염인이 건강을 유지하며 노동을 비롯하여 사회 참여 전반에 일체의 제한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현재 질병청에 감염이 확인되어 등록된 생존 감염인의 89.1%가 만 15세에서 64세까지의 생산가능인구이다[38]. 그러나 HIV 감염에 부여된 뿌리 깊은 낙인은 감염인들이 취업 시장에 진입하여, 경제 활동을 지속하고, 이를 통해 삶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을 매우 어렵게 해온 바 있다. HIV 감염은 산업안전보건법 상의 근로 금지 및 제한 대상이 아니며, 거의 모든 일터에서 별도의 감염 예방 조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은 “사용자는 근로자가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근로관계에 있어서 법률로 정한 것 외의 불이익을 주거나 차별대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명시하고 있으나, 감염 사실이 밝혀질 경우 차별적 대우를 받거나 해고당할 것을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는 HIV 감염이 직업 상실과 빈곤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일례로 HIV 감염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HIV낙인지표조사에 따르면, 2016년 당시 전체 연구 참여자의 42.3%가 월 100만원 이하의 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17]. 전체 응답자의 55%가 전문대학교를 포함한 대학 졸업자였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는 충분한 교육과 취업 시장 진입 조건을 갖춘 감염인들이 직업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연구 참여자 중 20%에 달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일을 그만두거나 구직이나 승진 시도를 하지 않기로 스스로 선택하였다고 보고하는데, 이는 상당 수의 감염인들이 자신의 직업적 능력과 관계없이 낙인에 대한 예상(anticipated stigma)으로 인해 노동환경에서 이탈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확인시켜 준다. 2022년 확인된 신규 감염인의 절반 이상인 53.7%가 취업 시장에 진입하는 20-34세라는 점을 감안할 때[38], 첫 확진 이후 고용 불안정이 이들의 생애 전반에 거쳐서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직장 내 건강검진은 근로자의 건강 관리를 위해 사업주가 반드시 제공해야 하는 혜택이나, HIV 검사가 포함될 경우 감염인이 고용 안정을 유지하는데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보건의료서비스 및 HIV/AIDS에 관한 국제노동기구와 세계보건기구의 공동 가이드라인’은 HIV 감염을 근거로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나 낙인이 허용되지 않아야 하며, 사업장에서 HIV 검사를 진행할 경우 검사의 자발성과 비밀 유지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39]. 또한 HIV 감염인의 취업을 제한하기 위한 스크리닝 용도로 검진이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권고하고 있다[39]. 인권위는 2009년 HIV 감염을 근거로 한 외항선원에 대한 취업제한이 차별이며 그에 따라 선원법 시행 규칙을 개정할 것을 권고한 바 있으며[40], 2019년에는 119 구조구급대원과 간호사에게 HIV 감염을 근거로 사직을 종용한 건에 대해 모두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차별 행위로 판결하고, 해당 기관에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하기도 하였다[41,42].

119 구조구급대원과 간호사에게 HIV 감염을 이유로 사직을 종용한 사건들은 어떻게 하면 근로자, 특히 혈액 노출의 가능성이 있는 업무에 종사하는 보건의료인의 일할 권리를 보장하면서 환자의 안전을 도모할 것인지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예증한다. 현행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은 감염인에 대한 고용주의 차별금지 의무를 명시하고 있을 뿐, 실제 차별이 발생했을 경우 이를 구제할 별도의 방법이나 제재 수단을 갖추지 않고 있다. 특히 보건의료인을 비롯하여 HIV 감염인이 혈액 노출 가능성이 있는 업무에 종사할 경우, 업무 배제의 구체적인 근거와 범위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관해서 공식적으로 논의된 바가 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영국의 보건부는 2014년부터 공식 관리지침을 통해 보건의료인이 HIV 양성일 경우, 바이러스가 미검출 상태로 억제되어 있다면 혈액노출 관련 업무라고 하더라도 배제될 필요가 없으며, 해당 기관의 동료나 직무 수행 대상자에게 자신의 감염 사실을 고지할 의무 역시 없다고 정하고 있다[43]. 한국에서 역시 HIV 감염을 근거로 직무상의 불합리한 배제나 퇴직 종용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 조치를 보다 구체적으로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또한 보건의료 영역의 경우 업무 특성에 기반하여 노출 및 전파 위험을 평가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관계 당국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제시할 필요가 있다. 감염인의 일할 권리의 보장은 지속적인 치료를 통한 건강 유지가 경제 활동 및 사회 참여로 이어질 수 있도록 연결하는 핵심적인 고리이며, 장기적 관점에서 개인의 삶의 질 증대에 크게 기여하는 것은 물론 실업과 빈곤, 불건강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줄인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제이다.

결론

한국의 HIV 감염인 단체들은 지난 10년간 의료, 사법, 노동의 세 영역에 산재한 구조적 문제들을 파악하고,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바 있다. 일례로 한국 HIV/AIDS감염인연합회 KNP+는 요양병원에 입원할 수 없거나 퇴원 이후 일상 생활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필요한 감염인들을 감염인 동료 활동가가 직접 방문하여 돌보는 커뮤니티 케어 모델을 개발한 바 있다. HIV 감염인이 지역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고, 의료 및 복지의 영역에서 여타 필요한 사회적 자원들에 연결될 수 있도록 연계하는 활동을 2022년부터 해오고 있다. 또한 의료 현장에서의 차별을 줄이기 위해 공공 병원 및 사회적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민간 병원을 직접 방문하여 감염인 진료에 필요한 노하우를 제공하고, 협력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자체적으로 벌이고 있다. 더불어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 알(R)은 청년 감염인들이 차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취업을 포기하지 않도록 관계 법령을 연구하고 취업 사례를 수집하여 공공 아카이브를 구축하였고,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역시 감염 사실에 근거한 고용 상의 권리 침해에 대응하기 위한 기초 작업을 한 바 있다[44,45].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은 대부분 국가로부터의 재정 지원 대상이 되지 못하였으며, 민간에서의 모금 활동 등을 통해 어렵게 이어져 온 바 있다. 의료, 사법, 노동의 세 영역은 모두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영역으로 민간의 자체적 노력만으로는 제도 개선에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으며, 정부 부처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을 필요로 한다. 후천면역결핍증후군의 예방관리대책과 이에 기반한 국가 에이즈 관리사업이 한국의 HIV 정책의 주요 기조를 형성한다고 할 때, 차별과 낙인 감소가 국가적 대응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낙인은 건강의 구조적 결정 요인으로 단순히 질병에 대한 대중적 인식에 의해서만 형성되지 않으며, 의료, 사법, 노동의 각 영역에서 제도가 작동하는 구체적인 방식을 통해 그 힘을 발휘한다. 따라서 낙인 감소에 근거한 공중보건 증진은 대중 인식 개선을 위한 홍보 활동뿐만 아니라 법적, 제도적 개선을 통해서만이 달성 가능하다. 의료 환경에서의 차별 금지, 19조 폐지를 비롯한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의 개정, 감염인의 삶의 질 향상과 노동권 보장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적 개입 및 일선 현장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영국은 신규 HIV 감염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국가 중의 하나로 2014년 5,790건에 달하는 신규 감염 보고가 2019년에는 3,770건으로 줄어든 바 있으며, 2021년 새로운 ‘HIV 액션 플랜’을 발표하면서 2025년까지 신규 감염을 연간 600명 이하로 낮추겠다는 과감한 목표를 세운 바 있다. 이러한 정책적 성과와 포부는 국가적 HIV 전략 수립에서 예방 증진이 감염인의 삶의 질 증진을 통해 가능해진다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고, 그에 따라 낙인과 차별의 문제를 의료, 사법, 복지의 각 영역에서 구조적으로 다루어 왔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한국 역시 미검출 시 전파불가라는 U=U 캠페인의 과학적 성과 아래 보다 효과적인 국가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할 매우 중요한 기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HIV에 감염한 사람을 곧 질병의 매개체로 규정하고, 개개인을 범죄화하고 고립시키는 사회적 차별과 낙인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은 채, 변화를 위한 도약을 할 수가 없다. 불평등과 낙인, 차별이 삶의 조건을 열악하게 하며, 바로 여기에 노출된 사람들이 HIV 감염 위험에 노출된다. 한국에서 신규 감염이 줄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환자들이 일상을 잘 지켜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의료, 당사자와 감염 취약 집단의 참여와 리더십에 기반한 보건 정책,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법과 제도의 개선을 통해 예방 정책의 새로운 장을 열어내야 한다.

Notes

Conflict of Interest

No potential conflict of interest relevant to this article was reported.

Acknowledgements

The authors acknowledge with thanks the contribution of Miran Kwon at the IPLeft and Dr. Jae-Phil Choi at the Seoul Medical Center for commenting on a draft.

References

1. The Joint United Nations Programme on HIV/AIDS (UNAIDS). The path that ends AIDS: 2023 UNAIDS global AIDS update. Accessed January 13, 2024. https://www.unaids.org/en/resources/documents/2023/global-aids-update-2023.
2. Choi JP, Seo BK. HIV-related stigma reduction in the era of undetectable equals untransmittable: the South Korean perspective. Infect Chemother 2021;53:661–675.
3. Rueda S, Mitra S, Chen S, et al. Examining the associations between HIV-related stigma and health outcomes in people living with HIV/AIDS: a series of meta-analyses. BMJ Open 2016;6e011453.
4. Andersson GZ, Reinius M, Eriksson LE, et al. Stigma reduction interventions in people living with HIV to improve health-related quality of life. Lancet HIV 2020;7:e129–e140.
5. Gesesew HA, Tesfay Gebremedhin A, Demissie TD, et al. Significant association between perceived HIV related stigma and late presentation for HIV/AIDS care in low and middle-income countrie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PLoS One 2017;12e0173928.
6. Ocloo J, Matthews R. From tokenism to empowerment: progressing patient and public involvement in healthcare improvement. BMJ Qual Saf 2016;25:626–632.
7. Seo BK. Empowerment as a vision of social science research: experiences and lessons from “Korean people living with HIV stigma index”. Econ Soc 2017;(116):332–366.
8. Goffman E. Stigma: notes on the management of spoiled identity Penguin; 1976.
9. Kleinman A, Hall-Clifford R. Stigma: a social, cultural and moral process. J Epidemiol Community Health 2009;63:418–419.
10. Turan JM, Elafros MA, Logie CH, et al. Challenges and opportunities in examining and addressing intersectional stigma and health. BMC Med 2019;17:7.
11. Hatzenbuehler ML, Phelan JC, Link BG. Stigma as a fundamental cause of population health inequalities. Am J Public Health 2013;103:813–821.
12. Cho BH. Sexuality, risk and HIV/AIDS Nanam; 2008.
13. Shin SB. A study on health related quality of life in people living with HIV/AIDS in Korea. Health Soc Welf Rev 2011;31:424–453.
14. Seo BK, Kwon MR, Na YJ, Son MS, Yi IG. HIV Stigma and the long-term care crisis in South Korea. J Crit Soc Policy 2020;(67):71–111.
15. Seo BK. The normalization of HIV and queer necropolitics in South Korea. Econ Soc 2021;(129):218–257.
16. GNP+. The People Living with HIV Stigma Index. Accessed November 30, 2023. https://www.stigmaindex.org/.
17. Korean Network for People Living with HIV/AIDS. The people living with HIV stigma index in South Korea 2016-2017 Korean Network for People Living with HIV/AIDS; 2017.
18. Park KS, Shin JY, Yang EO, et al. 2022 perception of people living with HIV on HIV/AIDS Love4One; 2023.
19. Safreed-Harmon K, Anderson J, Azzopardi-Muscat N, et al. Reorienting health systems to care for people with HIV beyond viral suppression. Lancet HIV 2019;6:e869–e877.
20. National Human Rights Commission of Korea. Decisions. Accessed November 30, 2023. https://case.humanrights.go.kr/dici/diciList.do.
21. Na YJ, Kwon MR, Kim DH, et al. Survey of discriminations against people living with HIV/AIDS National Human Rights Commission of Korea; 2016.
22. National Human Rights Commission of Korea. Policy recommendation for improving health care discrimination against people living with HIV and AIDS patients National Human Rights Commission of Korea; 2017.
23. Korean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Agency. Guidance for facilities caring for people living with HIV Korean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Agency; 2020.
24. Gantayet-Mathur A, Chan K, Kalluri M. Patient-centered care and interprofessional collaboration in medical resident education: where we stand and where we need to go. Humanit Soc Sci Commun 2022;9:206.
25. Eisinger RW, Dieffenbach CW, Fauci AS. HIV Viral load and transmissibility of HIV infection: undetectable equals untransmittable. JAMA 2019;321:451–452.
26. Barré-Sinoussi F, Abdool Karim SS, Albert J, et al. Expert consensus statement on the science of HIV in the context of criminal law. J Int AIDS Soc 2018;21e25161.
27. Yang YT, Underhill K. Rethinking criminalization of HIV exposure - lessons from California’s new legislation. N Engl J Med 2018;378:1174–1175.
28. The Lancet Hiv. Time to end discriminatory laws against people with HIV. Lancet HIV 2021;8e729.
29. Mayer KH, Sohn A, Kippax S, Bras M. Addressing HIV criminalization: science confronts ignorance and bias. J Int AIDS Soc 2018;21e25163.
30. National Human Rights Commission of Korea. Recommendation for the revision of AIDS prevention law National Human Rights Commission of Korea; 2007.
31. Constitutional Court of Korea. Adjudication on constitutionality of the Article 19 of the AIDS Prevention Law. Accessed November 30, 2023. https://ecourt.ccourt.go.kr/coelec/websquare/websquare.html?w2xPath=/ui/coelec/dta/casesrch/EP4100_M01.xml&eventno=2019%ED%97%8C%EA%B0%8030.
32. Constitutional Court of Korea. Decision on the constitutionality of the Article 19 of the AIDS Prevention Law. Accessed November 30, 2023. https://isearch.ccourt.go.kr/view.do?idx=00&docId=60579_010200.
33. The White House. National HIV/AIDS strategy: for the United States 2022–2025. Accessed November 30, 2023. https://files.hiv.gov/s3fs-public/NHAS-2022-2025.pdf.
35. National AIDS Trust. Prosecutions for HIV transmission. 2nd ed National AIDS Trust; 2010.
36. The Crown Prosecution Service. Intentional or reckless sexual transmission of infection. Accessed November 30, 2023. https://www.cps.gov.uk/legal-guidance/intentional-orreckless-sexual-transmission-infection.
37. Lancet HIV. Living well with HIV. Lancet HIV 2019;6e807.
38. Korea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Agency. Annual report on the notified HIV/AIDS in Korea, 2022 Korea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Agency; 2023.
39.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World Health Organization. Joint ILO/WHO guidelines on health services and HIV/AIDS International Labour Office; 2005.
40. National Human Rights Commission of Korea. Employment restriction based on HIV infection regarding seafarers National Human Rights Commission of Korea; 2009.
41. National Human Rights Commission of Korea. Employment discrimination based on HIV infection National Human Rights Commission of Korea; 2019.
42. National Human Rights Commission of Korea. Wrongful Dismissal based on HIV Infection National Human Rights Commission of Korea; 2019.
43. Public Health England. Emergency healthcare workers, exposure prone procedures (EPPs) and the exposure prone environment: advice from the United Kingdom Advisory Panel for healthcare workers infected with bloodborne viruses (UKAP). Accessed November 30, 2023. https://assets.publishing.service.gov.uk/media/5bd31b77e5274a6e33ce6b43/UKAP_Emergency_HCWs_EPPs_and_Exposure_Prone_Environment_v3.pdf.
44. Network for HIV/AIDS Human Rights Activists. Guideline for people living with HIV in the workplace. Accessed November 30, 2023. https://knpplus.org/archive/?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10462880&t=board.
45. Youth PLHIV Community of Korea ‘R’. HIV/AIDS information site: archive. Accessed November 30, 2023. https://hivaidsinfo.org/.

Peer Reviewers’ Commentary

이 논문은 우리나라에서 HIV 감염인과 AIDS 환자와 관련한 낙인과 차별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설명하고, 그에 따른 제도 개선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의 발전으로 HIV 감염은 에이즈로의 악화를 예방하고, 일종의 만성질환처럼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적절한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통해 체내 바이러스가 검출이 불가한 수준으로 떨어져 유지된다면, 타인에게 전파하는 것도 불가하다는 개념도 등장했다. 이 논문은 이러한 최근 연구 결과에 근거하여 각국의 HIV 감염 관련 인식과 제도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소개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HIV 감염 관련 낙인과 차별적 제도와 함께, HIV 감염 관련 제도의 개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 논문은 HIV 감염에 대해 의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올바른 인식을 확립하고, 적절한 제도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정리: 편집위원회]

Article information Continued